그림을 그릴 수 없는 해가 있었다.
실패가 쌓이면 실수를 견디기 어려워진다. 강민석은 화면을 수십 번 고치고, 매일 들여다보고, 머릿속에서 미리 그려 보았다. 그래도 실수는 줄지 않았다. 답은 내가 정한다는 고집이 남고, 나만 보이는 흔적이 쌓였다. 그러다 붓을 들 수 없는 자리까지 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힘 I⟩은 2017년 작품이다. 가로 100센티미터, 세로 65센티미터. 그해에 이 연작으로 남은 것은 이 한 점뿐이다. 그리고 2018년에는 한 점도 없다.
달리기는 힘을 쓰는 일이 아니라 채우는 일이었다.
보통은 반대로 생각한다. 달리면 힘이 빠진다고. 강민석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대회를 한 번 마치고 나면 두 달 동안 몸에 힘이 꽉 차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계속 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5년이 넘었다. 해마다 두 번 이상 하프마라톤에 나갔고 언제나 완주했다. 대회가 없는 날에도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를 꾸준히 달렸다. 지금도 달린다.
그리고 2019년, 이 연작에서 열네 점이 한꺼번에 나온다.

엔진 소리는 심장 소리와 같았다.
달리는 동안 그는 자기가 그려온 것이 되어 갔다. 노면을 밟는 타이어 소리는 자기 발자국 소리였다. 달릴 때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차체가 바람을 가르며 받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어느 지점을 넘기면 바깥 소리가 다 사라지고 자기 호흡만 남는다.
자동차를 15년 그려온 사람이 그것을 몸으로 겪은 것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강민석에게 자동차는 처음부터 자기를 대신하는 형상이었다. 내성적인 사람이 직접 나서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가면이었다. 그런데 달리기는 그 가면을 몸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기 전에 먼저 그것이 되어 본 것이다.
두 대는 나와 내가 아니다.
이 시기 화면에는 대개 자동차 두 대가 있다. 둘 다 뒷모습이다. 앞을 향해 달리는 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두 대는 자신과 자기 내면이 아니다. 앞에 있는 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또 누군가가 쫓아온다.
강민석이 이 시기에 말하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다. 앞의 것을 쫓기만 하고, 동시에 뒤에서 쫓기고 있는 자리. 그는 그것을 현대인의 상황이라고 부른다.
사람과 자동차가 닮았다고 그가 생각하는 지점도 여기다. 질주하고, 경쟁하고, 앞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는 모른다.
왜 쫓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말한 적이 있다. 누구나 그런 것 아니냐는 말로 넘기지 않는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자기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는 대상이 필요해진다. 그 대상이 별 의미가 없어도 상관없다. 무언가를 쫓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는 돌파구가 된다.
그래서 이 화면의 두 대는 겨루는 상대가 아니다. 서로에게 이유가 되어 주는 자리에 가깝다.

마라톤에는 구간의 승자가 없다.
오래 달려 본 사람은 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겠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다. 두 시간 가까이 달리다 보면 앞서가던 사람이 계속 바뀐다. 조금 전에 앞섰던 사람을 지나치고, 얼마 뒤에 다시 그 사람에게 밀린다.
어느 구간에서 누가 앞섰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남는 것은 결승점 하나다. 시간도 큰 의미가 없다고 강민석은 말한다. 저마다 다른 힘과 다른 속도로, 다만 같은 곳을 향해 간다.
그가 이 연작에 붙인 글에는 타협과 공존이라는 말이 있다. 치열한 경쟁을 그리면서 동시에 타협과 공존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앞뒤가 안 맞아 보인다. 마라톤을 놓고 보면 맞아떨어진다. 옆 사람을 이겨야 내가 결승점에 닿는 것이 아니다. 같은 길 위에 있을 뿐이고, 각자 자기 몫을 달릴 뿐이다.
앞의 화면으로 돌아가 보자. 두 대의 자동차는 겨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겨루는 그림이 아니다. 각자의 힘으로 각자의 결승점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서로가 서로의 앞과 뒤에 있다.
달리기를 자기 일의 일부로 삼은 사람이 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달렸고,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냈다. 그런데 그가 달리는 이유는 강민석과 다르다. 그는 달리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얻으려고 달린다고 했다. 머릿속을 비우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강민석은 반대쪽이다. 그는 채우려고 달린다. 대회를 마치고 두 달 동안 몸에 힘이 남아 있다는 그의 말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느끼는 것이다.
같은 행위인데 방향이 정반대다. 한 사람은 비우려고 달리고, 한 사람은 채우려고 달린다. 그리고 그 차이는 화면에 그대로 나타난다.
물감을 두껍게 짜서 흘리고, 그 위에 다시 흘렸다.
이 연작의 화면이 다른 연작과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먼저 물감을 아주 두껍게 짜서 흘린다. 그것으로 자동차 형상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물감을 흘려 내린다.
그래서 색이 강하게 남는다. 섞이지 않은 원색이 그대로 있고, 흘러내린 물감끼리 만나 섞이는 자리에서는 질감이 거칠게 일어난다.
그런데 이 흘리기는 손에 맡긴 것이 아니다. 강민석은 이것을 우연과 필연이라고 적었다. 흘러내리며 무엇이 생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로 흐를지는 정해져 있다. 화면을 세워 두면 물감은 위에서 아래로만 간다.

달릴 때 우리는 힘 한가운데에 있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있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있고 그 안의 산소가 있다.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있고, 발바닥으로 올라오는 아스팔트 노면이 있다.
온몸으로 느낀다. 그런데 그중 무엇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이 연작이 하려는 일이다.
흘러내린 물감 한 줄기는 선이다. 그 선을 하나 더 놓고, 또 하나 더 놓는다. 수없이 쌓이면 어느 지점에서 선 하나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것이 그렇게 모습을 갖춘다.
강민석은 이것을 해체라고 부른다. 2022년에 그는 아크릴 물감을 수직으로 흘려 자동차의 형상을 해체한다고 적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해체는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형태가 풀리는 것이지 자리를 뜨는 것이 아니다. 흘러내린 선들 사이로 자동차는 그대로 있다. 화면을 오래 보면 볼수록 더 또렷해진다.
달리는 사람과 같은 자리다. 바람과 공기와 소리 한가운데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여전히 달리고 있다.
잭슨 폴록도 물감을 흘렸다. 그의 화면에는 처음부터 형상이 없다. 1947년에 그는 자기가 그림 안에 있다고 썼다. 화면 밖에서 대상을 보고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닮은 데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다르다. 폴록의 화면에는 그 힘 속에 있을 누군가가 없다. 강민석의 화면에는 있다. 자동차를 먼저 그려 두었기 때문이다.
자세도 다르다.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그 둘레를 돌았다. 사방에서 물감이 떨어지니 화면에 위아래가 없다. 강민석은 화면을 세워 둔 채 흘린다. 그러면 중력이 방향을 정해 준다. 선은 위에서 아래로만 간다. 달리는 사람이 앞으로만 가듯이.
2019년 하반기, 실이 들어온다.
⟨끝없는 힘 XIII⟩은 한 변이 41센티미터인 작은 정사각형이다. 그 위를 자수실이 지나간다.
작다. 아주 작다. 같은 해에 나온 다른 작품들이 1미터 60센티미터를 넘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처음 대 보는 재료를 큰 화면에 바로 쓰지는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실은 물감과 성질이 반대다. 물감은 흐르고 번지고 섞인다. 실은 흐르지 않는다. 놓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강민석은 이것을 통제라고 부른다. 마라톤이 몸으로 자기와 대화하는 일이었다면, 실은 화면 위에서 힘을 붙드는 일이었다. 그가 야수라고 부르는 것 — 안에서 올라오는 그림자와 분노 — 을 이해하고 다루기 시작한 자리가 여기다. 2021년에는 이 방식이 연작의 중심이 된다.
그러니 이 연작은 하나의 양식이 아니다. 강민석은 자기 작업이 진화하고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끝없는 힘⟩은 그 말이 가장 잘 보이는 연작이다. 2017년의 한 점에서 시작해, 2019년에 쏟아지고, 실을 만나 방향을 틀고, 이윽고 ⟨끝없는 충격⟩이라는 다른 계절로 넘어간다.
다만 그 전에 이 시기가 있었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누군가를 쫓아 달리던 시기. 그리고 달릴수록 힘이 차오르던 시기가.

참고 자료
작품 정보 — ⟨끝없는 힘⟩ 연작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42점. 이 글의 도판은 ⟨Endless Force I⟩(100×65cm, Acrylic on Canvas, 2017), ⟨Endless Force II⟩(165×97cm, Acrylic on Canvas, 2019), ⟨Endless Force III⟩(162×112cm, Acrylic on Canvas, 2019), ⟨Endless Force XVIII⟩(155×89.6cm, Mixed Media Acrylic Thread, 2020).
기법 — 물감을 두껍게 짜서 흘려 형상을 만든 뒤 그 위에 계획된 한 방향으로 드리핑. 2019년 하반기부터 자수실이 더해진다.
문헌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7). / 잭슨 폴록, 「My Painting」, 『Possibilities』 1호(1947). / 한스 네이머스가 1950년에 촬영한 폴록의 작업 기록.
작가노트 — 강민석 작가노트(2012–2025) 중 2017년·2021년·2022년 항목. 2017년 노트는 심장 소리와 숨소리가 섞여 힘이 된다고 적고 있고, 2021년 노트에는 응축된 수많은 선으로 야수를 길들인다는 문장이 있다.
연재 안의 자리 — 실이 시간을 붙드는 이야기는 No.6에서 다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