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p Lab Busan 2026 ·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전시명은 《감정은 정지하지 않는다. 기억은 고정되지 않는다.》이며, 강민석·박자용 두 작가가 참여한다. 강민석이 맡은 공간 전체는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라는 하나의 문장 아래 구성된다. 이 전시는 감정과 기억이 고정된 채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환경, 매체에 따라 계속 변형되고 재저장된다는 문제의식 위에서 출발한다.



왜 아이스크림인가 — 회화 이후에 남겨진 것
강민석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왜 '물감 조각'을 모아 아이스크림의 형태를 만들게 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이 아이스크림은 귀엽거나 대중적인 이미지를 빌려온 선택이 아니다. 작가노트에서 강민석은 남은 물감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고 말하며, 그것은 유희적 오브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스쳐간 기억과 감정의 응축이라고 설명한다.
회화가 고통과 긴장, 충돌의 흔적을 담아내는 과정이라면, 아이스크림은 그 이후에 남은 조각들 속에서 다시 태어난 또 다른 풍경이다. 아이스크림은 회화 바깥에서 갑자기 생겨난 이미지가 아니라, 회화의 과정에서 남겨진 물질이 다른 형태로 재조직된 결과다. 강민석에게 물감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감정과 시간의 흔적이며, 그 흔적이 쌓이고 굳고 남은 뒤 아이스크림이라는 익숙한 형상으로 다시 나타난다.
아이스크림은 달콤하지만 곧 녹아내리고, 즐겁지만 동시에 사라져가는 순간을 품고 있는 대상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라지는 감각·붙잡을 수 없는 기쁨·지나가버린 시간의 조각을 아이스크림이라는 형상에 담아낸다. 하지만 그의 아이스크림은 실제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먹을 수 없고, 녹지 않으며, 향도 없고, 차갑지도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스크림의 본질은 사라지고 외형만 남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시의 중심 문장 —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 가 생긴다.
공간의 세 축 · 문 앞에서 이미 시작되는 인식
강민석의 공간은 문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관객은 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세 개의 구조를 동시에 마주한다. 왼쪽에는 소형 컴퓨터 기반의 장치가 있고, 오른쪽에는 실제 조형물이 들어 있는 설치가 있으며, 정면 문 안쪽에는 세 대의 50인치 TV가 세로로 서 있는 방이 보인다. 이 배치는 단순한 진열이 아니라 작가가 다루는 기억의 구조를 공간적으로 나눈 결과다. 반복되는 이미지, 관객의 개입으로 변형되는 이미지, 실제가 왜곡되어 보이는 물질적 구조가 한 방 앞에서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관객은 한 작품씩 순서대로 이해하기보다, 시각적 인상 전체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후에 각 구조의 차이를 체험하게 된다.
방 안 중심의 세 대의 50인치 TV에는 각각 하나의 아이스크림 영상이 반복 재생된다. 쌍쌍바처럼 둘로 나눌 수 있는 구조, 멜론바를 떠올리게 하는 막대형, 소다 계열의 청량한 감각을 부르는 형태 — 이 아이스크림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중적인 형태를 모방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영상들이 3D 그래픽이나 디지털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실제로 아크릴 물감으로 조형물을 만들고,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그것을 공중에 매달아 회전시키며 촬영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물질의 기록이다. 그러나 전시장에서는 소리가 제거되어 있고, 관객은 오직 시각만으로 그것을 마주한다.
Rich Strawberry & Milky Cream · Sweet Melon Mango Popping · Sparkling Lemon Soda Cool 같은 제목은 새로운 맛을 창조하려는 이름이 아니라, 관객의 입안과 기억 속에 이미 남아 있는 감각을 즉각 호출하기 위한 장치다. 강민석의 아이스크림은 조형물이지만, 동시에 기억의 트리거다. 실제 맛은 없지만, 관객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감각의 기억을 끌어낸다.
왼쪽 장치 ·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아이스크림⟩
라즈베리파이·모니터·카메라로 구성된 이 장치는 처음에는 일상적인 영상과 무작위로 반복되는 여러 아이스크림 이미지로 시작된다. 관객이 손 제스처를 하면 영상은 과거로 역행하듯 흐려지고, 회색으로 바뀌고, 대비가 강해지면서 훼손된다. 동시에 작은 모니터에서 회전하던 여러 아이스크림 중 하나가 선택되어 남고, 이후 역재생된 영상의 일부 장면과 결합하면서 하나의 결과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 장치가 중요한 이유는, 기억이란 원본을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지우고 결합하면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단순한 인터랙션 효과로 두지 않고, 관객의 개입을 통해 기억의 생성 구조를 눈앞에서 작동하게 만든다.


오른쪽 설치 · ⟨기억의 형태는 희미하게 드러난다⟩
실제 아이스크림 조형물은 아크릴 관 안 중앙에 놓여 있고, 특수 필름과 물을 통해 굴절된 상태로 보인다. 관객은 분명 원본 조형물이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눈앞에서 인식되는 것은 그 원형이 아니라 흐리고 일그러진 이미지다. 게다가 이 이미지는 한 방향에서 고정되지 않고, 관객이 360도로 움직이며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즉 하나의 선명한 형태가 아니라, 계속 가변적으로 흔들리는 인식으로 나타난다.
이 작업은 사진이나 영상처럼 과거를 꺼내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물질을 눈앞에 두고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 설치는 '기억을 본다'기보다, 실재를 보는 방식이 얼마나 쉽게 흐려지고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에 가깝다. 실제는 존재하지만, 우리가 붙잡는 것은 늘 흐릿하고 달라진 상태다.
가벼운 형상, 무거운 질문
이번 공간이 흥미로운 이유는, 무거운 이야기를 매우 대중적이고 가벼운 형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감정·인식·모방·실재 같은 주제는 자칫 무겁고 설명적인 담론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나 강민석은 아이스크림이라는 너무 익숙하고 쉬운 형태를 통해 관객을 끌어들인다. 관객은 먼저 "예쁘다", "맛있어 보인다", "무슨 맛일까"라는 반응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그 뒤에 제목과 구조를 통해 조금씩 인식이 뒤집힌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강해진다. 익숙한 형상으로 관객을 안심시킨 뒤,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 기억처럼 왜곡되고 굳어진 모방의 구조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은 강민석의 공간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이자, 관객이 나간 뒤에도 오래 남는 문장이다.
정리하면, 강민석의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는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한 가벼운 전시가 아니다. 회화의 과정에서 남은 물감 조각이 조형물로 바뀌고, 그 조형물이 다시 영상과 장치와 설치로 확장되면서, 감정과 기억이 어떻게 형태를 얻고 어떻게 다시 흐려지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 정보
전시명: 감정은 정지하지 않는다. 기억은 고정되지 않는다. 강민석 공간 구성: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참여 작가: 강민석, 박자용 전시 기간: 2026년 4월 21일 – 5월 2일 (일·월 휴무) 관람 시간: 오후 1시 – 5시 장소: 아트랩(ARTLAB), 부산 수영구 망미번영로 63번길 61-4, 1층 연계: Loop Lab Busan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