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의 그림 앞에서.
이번에는 오래된 그림 앞으로 간다.
2012년과 2013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그 사이 강민석은 여러 번 방향을 바꿨다. 우리가 앞선 노트에서 읽은 사막도, 길을 잃던 숲도, 안식처로 들이닥친 태풍도 모두 이 그림들보다 나중의 일이다.
그러니까 ⟨나침반 없이 항해하다⟩는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던 무렵에 가깝다. 열네 점, 두 해. 재료는 혼합재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지금 그의 그림이 하는 이야기가 여기에 이미 거의 다 들어 있다.
강 건너의 도시.
2012년, 강민석은 홍콩에 갔다.
드넓은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도시가 있었다. 화려한 조명과 건축물, 그는 그것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미래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람은 대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느낀다. 감탄,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하는 물음. 그날 밤 강 건너에서 빛나던 것은 도시였지만, 그가 본 것은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이었을 것이다.
⟨Navigate without Compass⟩는 그 밤에서 나왔다. 이 연작의 타이틀 작품이다.
화면 위쪽은 온통 붉다. 붉은 하늘에 크림빛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고, 그 사이로 흰 자동차 한 대가 떠 있다. 문에는 숫자 7이 적혀 있다. 바퀴가 땅에서 떨어져 있다. 아래로는 고층 건물이 빼곡한 도시가 붉고 노란 빛에 잠겨 있고, 화면 왼쪽에는 대관람차가 아주 희미하게 비친다. 보일 듯 말 듯하다.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
제목에 있는 항해는 배가 하는 항해가 아니다.
강민석의 설명은 이렇다. 규칙도 없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방향을 알려주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하늘. 그 하늘을 건너 저 드넓은 도시에, 자기가 꿈꾸는 곳에 닿기 위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항해다.
왜 하필 하늘이었을까. 답은 그가 어릴 때 본 영화에 있다. ⟨백 투 더 퓨처⟩다.
1편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떠오르고, 그 직전에 대사 한 줄이 나온다. "도로? 우리가 가는 곳엔 도로가 필요 없어."
길이 없어도 된다는 말. 어린 강민석이 그 장면에서 본 것이 그것이었고, 서른 해쯤 지나 그는 같은 문장을 자기 그림으로 다시 썼다. 도로 없이 가는 자동차, 나침반 없이 하는 항해. 같은 이야기다.
저 빛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Navigate without Compass NO.2⟩ 앞에 서면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하늘이 더 붉다. 양쪽 가장자리에는 야자수가 검은 그림자로 서 있고, 화면 아래에는 도시가 황금빛으로 타오른다. 그 사이에 등대처럼 생긴 탑이 하나 보인다. 그리고 같은 7번 자동차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사실 같지 않다.
강민석 자신이 그렇게 말한다. 저 앞의 붉은 하늘과 도시는 신기루일 수도 있고 허상일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가는 일이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백 년 전 소설에 그런 빛이 하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밤마다 물 건너편 부두 끝에 켜진 초록 불빛을 바라본다. 건너편, 손에 닿지 않는 곳,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 거기 모여 있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고.
다만 끝이 다르다. 개츠비는 뒤로 떠밀렸다. 강민석의 자동차는 위로 떠오른다. 같은 빛을 바라보면서도 한쪽은 가라앉고 한쪽은 날아오른다. 이 연작이 불안한 그림이 아니라 희망 쪽에 서 있는 그림인 이유다.
화면이 신기루처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토너 잉크를 화면에 붙이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묽게 풀어 얹은 뒤,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마르도록 두었다. 색이 번지고 스미고 가라앉을 시간을 준 것이다. 손이 만든 선명함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흐릿함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선.
⟨Navigate without Compass NO.3⟩은 세로로 선 화면이다.
이번 하늘은 푸르다. 위쪽은 연한 노란빛, 아래로 갈수록 깊은 파랑으로 내려앉고, 크림빛 구름이 화면 가득 퍼져 있다. 같은 7번 자동차가 그 안을 비스듬히 지나간다.
그런데 화면을 가로지르는 것이 있다. 전선이다. 검은 선 여러 가닥이 하늘을 가로로 지난다.
전선은 막는 선이 아니다. 잇는 선이다. 전신주와 전선은 떨어져 있는 두 곳을 한 줄로 묶고, 이쪽의 소식을 저쪽으로 보낸다.
강민석은 이 선에 시간의 뜻이 크다고 말한다. 공간과 공간을 잇기도 하지만, 화면을 가로로 과감하게 지나갈 때는 시간을 잇는 선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앞에서 본 영화도 그런 이야기였다. 자동차가 떠오르면 다른 시간으로 건너간다. 이 그림의 자동차도 구름 사이를 비스듬히 지나며 그 선들을 통과하는 중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화면이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선 너머는 지금과 다른 시간일 것이다.

바다 위에서 소리치다.
⟨Shout Destination⟩은 조금 다른 그림처럼 보인다. 여기서 자동차는 하늘을 날지 않는다.
붉은 하늘도 없다. 화면 전체가 초록이다. 두 대의 자동차가 나란히 달리고, 바닥에서 흰 물살이 튄다. 화면 저 위쪽 끝에 도시의 윤곽이 아주 흐리게 보인다.
그런데 저 초록은 벌판이 아니다. 바다다.
자동차가 바다 위를 달리고 있다. 배가 아닌 것이 바다를 건넌다. 하늘에 길이 없듯 바다에도 길이 없다. 그러니 이것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항해의 다른 장면이다. 하늘을 건너느냐 물 위를 건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자동차 지붕에 무언가가 실려 있다. 랠리카의 보조등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확성기다.
강민석은 그것이 자기 목소리라고 말한다. 난폭하게 달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목소리가 저기까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저곳을 향해 그는 소리를 지른다.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고,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제목을 다시 읽어 본다. Shout Destination. 목적지를 향해 외친다.
이 연작에는 그런 제목들이 더 있다. ⟨도전⟩, ⟨강한 의지⟩, ⟨밀고 나아가다⟩. 강민석은 자기 이야기가 꿈과 이상향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불안과 도전과 경쟁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목표가 생기면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는다. 가고 싶은 곳이 분명해질수록 못 갈까 봐 두렵고, 옆에서 달리는 차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는 이것이 자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덧붙인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들이 겪는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전환점.
강민석은 살면서 늘 전환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장소가 바뀌거나, 새로운 무언가가 자극이 되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고.
그에게는 홍콩의 밤이 그런 자리였다. 강 건너에서 빛나던 도시를 보고 돌아와, 그는 자동차를 하늘에 띄웠다.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사막을 그렸고, 숲에서 길을 잃었고, 안식처에서 태풍을 만났다. 그때마다 그림의 얼굴은 달라졌다.
그런데 이 오래된 화면을 다시 보면, 지금까지 그가 해 온 이야기가 여기에 이미 다 있다.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 그 앞의 불안, 그래도 가겠다는 마음.
나침반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래도 저 자동차는 계속 어딘가로 가고 있고, 지붕 위의 확성기는 아직 켜져 있다. 아마 우리에게도 강 건너에 도시가 하나쯤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나침반 없이 항해하다 Navigate without Compass⟩ 연작 14점, 2012–2013, 혼합재료. 타이틀 작품은 ⟨Navigate without Compass⟩(100×53cm, 2012). 작가 노트 및 2026년 8월 작가 구술.
영화 ⟨백 투 더 퓨처⟩(1985,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마지막 장면에서 자동차가 하늘로 떠오르며 남기는 대사 "Roads? Where we're going, we don't need roads."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 — 개츠비가 물 건너편 부두 끝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는 장면과,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마지막 문장.








